인류는 남성과 여성, 둘이다
거부된 할당제. 그 이유는 프랑스 헌법의 보편주의 정신, 즉 추상적인 개인이 국민주권을 구현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종교, 성, 인종, 민족 등의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 추상적 개인, 즉 이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로서의 추상적 개인만이 시민의 대표,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이주한 북아프리카인이 정치에 참여하고 대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북아프리카 이주민이라는 인종적·민족적 집단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추상적 개인으로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여성이 시민의 대표, 국민의 대표가 되는 것도 추상적 개인으로서의 여성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여성이란 집단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할당제는 추상적 개인으로 단일해야 할 시민들을 성의 차이로 여성 후보자와 남성 후보자로 나누어 여성에게 일정 비율의 할당을 요구해 보편적 참정권을 제한하고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보편주의의 이름 아래 여성할당제와 같이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차이의 인정을 촉구하는 적극적 조치의 토대를 무너뜨렸고 프랑스 여성들로 하여금 더 이상 과거의 차별을 보상하고 미래의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잠정적 우대 조치를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 여성은 남성과 같고 그래서 정치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시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이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로서의 추상적 개인인데 이 추상적 개인은 성의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 무성의 중립적 존재이므로 남성과 같은 평등한 권리라는 주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남녀동수 지지자들은 추상적 개인이라는 프랑스 헌법의 보편주의적 원리를 인정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추상적 개인의 이원성을 급진적으로 주장했다. 추상적 개인은 하나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둘이라는 것이다. 추상적 개인 그 자체에 이미 여성과 남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딸이나 아들로 태어나 여성이나 남성이 되며, 인류는 오직 둘로만 구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상적 개인은 무성의 존재가 아니라 이미 생물학적 성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 고로 인류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는 인간 종의 이원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사유에 의거해 남녀동수 지지자들은 국민과 그 대표들은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유성의 개인들이며 성적 존재 그 자체로서 공적인 일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성에서의 남녀동수, 더 나아가 권력의 남녀 공유를 요구하는 것은 여성이 특별한 자질이나 특수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 종의 이원성에 근거한 자연적 권리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형태를 넘어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의 차이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정치적 대표성에도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동수의 급진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에 여성할당으로 요구되던 30%, 40%가 아니고 50%라는 남녀의 동수를 요구했다는 정량적 수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유 방식의 전환을 희구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무성의 중립적 존재로서의 추상적 개인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가부장성과 남성의 권력 독점 현상을 비판했다. 현실 정치 속에서 대표된 개인은 결단코 추상적 개인이 아니라는 허구성을 고발하고 그 대안으로 남녀동수를 통한 권력의 공유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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