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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동수와 커플담론의 조우 남녀동수는 인간 종의 이원성에 기초한다.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추상적 개인은 하나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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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작성일 23-08-2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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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비전 없는 안철수의 새 정치도 구태 정치일 뿐

 




모든 국민은 새 정치를 열망한다. 국민은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위치와 정치적·종교적 신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의 새 정치를 꿈꾼다. 청년은 청년실업 문제를, 장애인은 장애인의 권리를, 기업가는 기업 활동을, 여성운동가는 성평등을, 다양한 계층의 국민은 다양한 내용을 담은 새 정치를 꿈꾼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국민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꿈을 담았던 ‘새 정치’라는 단어에 소유격이 붙여지면서 특정인의 것이 됐다. 안철수의 ‘새 정치’가 그것이다.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안철수의 ‘새 정치’ 담론과 프레임이 불편하다. 그렇다면 우린 구태 정치란 말인가? ‘새 정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안철수를 제외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구태로 분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 정치’와 ‘구태 정치’의 구도는 정치권 입장에선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하고 기분 나쁜 구도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국민의 입장에선 어떨까. 국민은 구도의 불편함보다 새 정치의 내용이 더 궁금하다. 왜냐하면 국민은 자신들만의 새 정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새 정치를 안철수도 함께 꾸고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그런데 새 정치에 여성이 안 보인다. 남녀동수를 주장하는 나의 입장에선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의 새 정치 또한 구태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대표자가 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의 절반으로서 여성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새 정치는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담아야 한다. 구태 정치가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와 대안을 찾아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담아야 진정한 의미의 새 정치가 될 수 있다.

안철수의 새 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수많은 ‘나’인 개인들이다. 지역이나 학연, 기타의 연고주의에 바탕을 둔 집단이나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나선 이들이 아니다. 집단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공적인 삶과 정치에 다가가고자 하는 성찰적 시민들이다. 그래서 파편화되기도 쉽고 흩어지기도 쉽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하는 정치는 새로운 가치와 철학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새로운 가치는 파편화된 성찰적 시민들을 연결하는 아교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란 무엇일까. 여성의 입장에서 ‘새 정치’가 담아야 하는 새로운 가치는 남녀동수다. 여성은 남성과 더불어 주권을 가진 시민의 절반, 인간 종의 절반을 구성하기 때문에 공적인 영역에서도 대표자가 될 수 있는 동등한 권리, 남녀동수가 보장되는 정치여야 한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정치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새 정치는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정치입니다’라고 선언적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구태 정치와 단절을 의미하는 새 정치는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즉 남녀동수를 통한 성평등 사회의 실현(equality by parity)이라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남녀동수는 여성의 과소 대표성보다는 남성의 과잉 대표성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래서 남녀동수는 여성이 정치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배려 차원에서 여성의 몫을 더 늘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에 침해된 절반의 권리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안철수의 ‘새 정치’에는 아직은 여성도, 남녀동수도, 성평등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 없는 민주주의,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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