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여성 기만… 새정연엔 여성 없어
여성할당제 도입을 위해 여성단체가 뜻을 모은 지 올해로 20년이 된다. 1994년 54개의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를 위해 ‘할당제 도입을 위한 여성연대’를 구성했고 2000년 법제화에 성공했다. 그동안 여성할당제는 척박한 여성정치 풍토에 단비와도 같았다. 1991년 0.9%에 지나지 않았던 지방의회 여성 의원은 15%를 넘어섰고 여성 국회의원도 15%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비는 단비일 뿐이다. 단비로 순간의 갈증은 해소할 수 있어도 토질을 개선하지는 못한다. 지역구 여성할당제의 의무화를 위한 크고 작은 노력은 남성들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됐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해 정당공천이 유지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새누리당도 그리고 새 정치를 하겠다며 통합 신당까지 만들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도 여성 후보 공천 확대를 위한 노력과 실천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여성을 기만했고 새 정치에는 여성이 없다.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의 목적은 단순히 여성 의원의 양적 확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공동체 운영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갖는 파트너로서의 여성의 정치적 지위와 역할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할당제를 통해 여성 의원들이 양적으로 증가했으나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국가공동체의 주체로 절반의 권리와 절반의 책임을 갖는 정치적 주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지는 못했다. 남녀동수를 주장하기에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남녀동수 운동을 촉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녀동수는 시민의 절반이 여성이듯 대표자의 절반이 여성이어야 하는 것을 자연권으로 인식한다.
또한 남녀동수 운동은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는 남성의 과잉대표에 의한 여성의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임을 부각시킨다. 여성할당제는 원인보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여성할당제는 남성들의 정치적 과잉대표 문제보다는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인식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여성의 과소대표의 원인이 남성의 과잉대표라는 문제의식이 결핍되면서 여성할당제에 의한 여성의 대표성 확대 주장은 남성의 권리 침해, 즉 역차별이라는 전도된 인식을 갖게 한다.
이러한 여성할당제를 통한 ‘좀 더 많은 여성’의 전략으로는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보상의 가치가 정치적 세력들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한 “좀 더 많은 여성”의 근거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50%에 대한 절대적 가치 부여가 필요하다. 대표성에서의 남녀동수는 여성이 당한 차별과 불평등과 배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인간 종의 이원성에 근거한 자연권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당장 남녀동수 의회 구성은 불가능에 가깝고 요원한 일처럼 보이지만, 남녀동수 운동을 통해 남녀동수, 즉 대표자가 될 동등한 권리는 민주적 정치공동체가 실현해야 할 보편적 가치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남녀동수의 원칙에 입각해 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정의와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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